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그해 여름, 대학교 2학년이었다. 나는 적음 형을 따라 청량산으로 들어갔다. 아프리카 우간다에나 있을 법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이 나라에서 일어났다. 이디 아민 다다처럼 군인이 독재자가 되어 광주에서 시민들을 죽였다. 저항하거나 항변하는 자들은 끌려가거나 입에 재갈이 물렸다.앞날의 희망이 사라지자 나는 적음의 바랑을 메고 그의 걸음을 따랐다. 청량리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봉화역에서 내렸다. 버스를 갈아타고 나는 빨치산처럼 험한 산길을 걷고 또 걸었다. 나를 사랑한다는 여자 후배 B를 데리고 갔다. 일주일간 적음과
빈털터리 백팔만이 당나귀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는 그 시간에 마돈걸은 강남의 한 와인 바에서 아는 오빠인 유세련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세련은 젊은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어학 연수 6개월로 모든 학업을 종치고는 청소부, 주유소 및 슈퍼마켓 종업원을 거쳐 교포가 운영하는 술집에서 4인조 코리아 밴드를 이끈 끝에, 생활 영어와 국제적인 매너를 몸에 완전히 익히고 조국으로 돌아온 꽃미남 중년이었다. 한국에서는 재미사업가 행세를 하며 여자들로부터 몇 푼 뜯어 먹으며 생활을 영위하였다. 수차례 고소를 당하였으나 그때마다 합의를 보고 곤경을 벗